황정향 박사(대구아동청소년심리발달센터 원장)

자신이 문제라며 눈물을 보이던 한 여고생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 여고생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아버지 또한 성장시기에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감정이나 정서가 잘못 표출돼 자녀를 문제아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 자녀의 어떤 문제를 호소할 때 "얘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이 자식한테 있다거나, 친구들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단정짓고, 부모의 가족력이나 성장환경·경험 등 부모쪽을 살피면 회피나 외면으로 일관한다. 자식이 힘들어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고, 또 최선을 다하며 키우는 경우는 더 그러하다. "첫째는 괜찮은데 둘째는 왜 그런지 몰라요"하거나 "우리 아이를 돌봐달라고 했지, 왜 내가 상담대상이 되어야 하냐"는 식으로 언짢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라도 자식의 문제 상황에 부모가 함께 공유하며 상담에 임할 때 문제해결 방법은 훨씬 더 많으며, 해소되는 경우도 훨씬 높다. 왜냐하면 가족은 절대로 개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관계는 흔히 모빌에 비유된다. 하나의 선을 건드리면 그와 연결된 다른 선도 함께 출렁거리므로 한 가족 구성원의 아픔은 그대로 다른 구성원에게도 전달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흔들리게 돼 있는 것이다. 둘째가 문제 있다며 호소하는 사례를 보더라도 괜찮다던 첫째도 속으로 아픔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의 성장에 절대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원으로 자리잡은 부모는 자신의 성향이 자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특히 극단적인 경험을 소유한 경우인 위의 사례에 나타난 여고생 아버지의 성장에서 성적으로 겪은 모진 혼란과 경험은 자신의 아내나 어린 딸에게 엄격이 지나쳐 오히려 이탈 행동을 만들 수 있게 한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를 배척하고, 아니 어쩌면 덮어두고 모른 체 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남자이면서도 남성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여성에 대한 극한 결벽증을 야기시켜 구속을 최고라 여긴 양육태도가 외려 자신의 딸을 병들게 하고 말았다. 딸아이도 건강한 성에 대해 알 수 없었고, 부정적인 면만이 주입돼 성 정체성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요즘은 자녀의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양육의 어려움은 더 크다고 느낀다. 자녀의 모습 뒤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어떤가를 한 번 둘러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